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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Home > 옛날 옛적에 > 민담  인쇄 퍼가기

과천에는 많은 민담들이 있습니다. 함께 알아 볼까요? 민담 :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흥미 위주의 허구적 이야기

과천동 향나무 전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앞에 향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밑에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서 조금 내려가면 서너 마지기 쯤 되는 논이 있었는데, 물이 좋아서 못자리를 내고는 하였다.
논 한 복판에 작은 섬처럼 논 바닥이 솟아 나와 있었는데, 옛날에는 거기서 구렁이가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들어가고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기에서 논 임자가 고사를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향나무 아래에도 구렁이가 살았는데, 그 곳에도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지 않고 못자리를 내면 구렁이가 나와 돌아다녀서 못자리를 못쓰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사를 지내면 구렁이가 나와도 못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지냈던 것이다.
향나무와 우물은 지금도 있다.

[자료 제공:전음용(남, 88세, 1991년 8월 채록)]
망경대 이야기(1)
관악산은 진산(鎭山)이고 청계산은 청룡산(靑龍山)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옛날에는 비가 오려고 하면 진산과 청룡산이 함께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천지개벽을 할 때 배를 타고 다니며 돌을 주어 망경대를 만들었는데, 관악산 꼭대기인 영주대(연주대)에 배를 대고 돌을 모았다고 한다. 큰 비가 와서 홍수가 났는데, 관악산 꼭대기만 빼고는 모두 물에 잠겼으므로 배를 탔다는 것이다. 청계산 정상의 이름은 이 때 여러 경치를 주어 모아서 만들었다고 하여 만경대(萬景臺)라고 불렀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윤(趙胤)이 이 곳에 와서 서울이었던 개성을 바라보았다고 해서 망경대(望京臺)가 되었다고 한다. 조윤이 온 것은 평양 조씨가 청계사(淸溪寺) 절에 산을 70정보를 떼어 주고 원찰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평양 조씨의 후손들이 청계사 앞에 지금부터 7-8년전에 큰 돌을 세우고 사연을 새겨 시조부터 7세까지를 모시는 신당을 만들었으며 매년 제향을 지낸다고 한다.

[자료 제공:갈현동 이용진(남, 75세)]
망경대 이야기(2)
이성계가 왕씨를 치고 조선을 건국한 후 충신은 불사이군이다,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조준의 동생 조견이 청계산으로 은거해 버렸다. 당시에 두문동 72현이니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 양반이 당시에 정치의 실력가로 그 양반을 꼭 붙잡아야만 민심을 수습시키고 이성계가 정치를 할 수 있는데, 숨어버렸으니 매우 곤란한 일이 많았다. 이전에는 조견과 이성계는 친구 간으로 조견은 장관, 이성계는 군사령관이었다. 하루는 이성계가 방원과 함께 찾아가니,. 조견은 여막을 짓고 은거하고 있는데, 방원이 와서는,
조선생 문을 여시오. 임금께서 오셨으니 문을 좀 여시오
라고 하니 조견은 내다 보지도 않고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
라고 하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임금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성계가 아들인 방원을 옆으로 비키게 한 후
자네 친구 이성계일세, 문 좀 열게
라고 하자 비로소 문을 열어 주었다. 문안으로 들어선 이성계가
나를 좀 도와 주게, 백성들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하며 조정에 나올 것을 권하였으나, 조견은 묵묵부답으로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여막을 나온 이성계는 친구를 위하여 청계사 절 옆에 큰 집을 지어주고 여막에서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조견은 여주로 도망을 하고 말았다. 조견은 청계산에 있으면서 매일 산위에 올라가 서울(개성)을 바라보며, 언제 다시 왕씨가 이씨를 물리치고 다시 집권할 수 있나를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망경대라고 후세 사람들이 불렀다. 여주로 도망간 후 이방원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견을 그대로 두면 불리하므로 사람을 시켜 죽여 버리게 하였다. 조견이 숨을 거두기 전에 자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비석을 세우는데, 비문을 고려충신조모지묘(高麗忠臣趙某之墓)라고 쓰라고 하였다. 자식들이 생각해보니 고려충신이라고 쓰면 곧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므로 개국공신이라고 비문을 해 세웠다. 그러나 그 얼마 후에 하늘에서 뇌성과 함께 벼락이 쳐서 비석의 허리가 부러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료 제공:문원동 권광환(남, 69세)]
노량진 새우장수 이야기
한강의 나루터인 노량진에 새우장수가 한 명 살고 있었다. 하루 팔아 하루 먹고 살아가는 형편이었는데, 하루는 강을 건너 서울에 장사를 하러 가다가 땅에 박혀 있는 작은 막대기에 지게 목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새우젓 독이 깨졌다. 새우장수가 지게에 걸린 나뭇가지를 캐내어 독이 깨진 분풀이를 하려고 파내기 시작했다. 열심히 파내려 가보니, 그것은 옛날에 엽전을 싣고 가던 배가 침몰되었는데, 세월이 흐르자 흙 속에 파묻혀 그 끝만 조금 삐져 나온 것이었다. 새우장수는 엽전을 찾아내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자료 제공:문원동 이종오]
갈현동 느티나무 전설
지금 갈현동의 은은쟁이 동네에는 옛날부터 느티나무가 동네 앞 양쪽으로 하나씩 서 있었고, 그 건너편에 훼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지금은 훼나무도 없어지고, 느티나무도 하나는 죽어 없어져 하나만 남아 있다. 그 위 느티나무에 지금부터 한 80년 전 쯤에 불이 났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나무 아래에서 살고는 했던 거지가 불을 놓았는데, 이 나무는 동네의 선비들이 날이 더우면 나와 글을 읽거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장기도 두고 이야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데 자료제공자의 셋째 어머니(작고)가 하루는 낮잠을 자는데, 꿈에 아, 애가 잠만 자면 어떡하냐. 우리 집에 불이 났는데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 놀라서 일어나 보니까 느티나무에 불이 나 끄러 간다고 동네가 온통 난리가 나 있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나서 북한군이 과천에 들어왔을 때는 이용진씨가 그곳으로 피난을 했었다고 한다. 느티나무 밑은 속이 비어 있었는데, 그 안으로 동네 사람 일곱 명이 피난해 숨어 있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 앞으로 인민군이 많이 지나갔으나, 다행히 나무 밑을 보지않고 지나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어두워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일행은 무사히 피난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느티나무에 귀가 달린 구렁이가 있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이 그 나무 밑에서 굿을 했었다. 아래 느티나무에도 뱀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갑자기 벼락치는 소리가 나서 웬일인가 했는데, 동네 개들이 모두 뛰어 나갔다. 나중에 보니까 어마어마하게 큰 구렁이가 떨어져 죽어 있었다.
그 송장 썩는 냄새때문에 근처에 가지를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제보자가 열대여섯 때 목격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 살아 있는 느티나무에서 그 뱀이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자료 제공:갈현동 이용진(남, 75세)]
과천의 땔나장수
옛날에 과천에는 땔나무 장사로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이 많았다. 과천의 한 땔나무장수가 소에다 한바리의 땔감을 싣고 서울 장안에 가서 나무를 파는데, 예쁘장한 젊은 색시가 땔나무를 사겠다고 왔다. 그 여자를 따라 땔감을 지고 그 집으로 갔더니 합버선을 신은 고운 기생이었다. 나무를 쌓아 놓으며 힐끔 힐끔 바라보니 보면 볼수록 천하의 미인이었다. 이 나무를 팔다가 상사병이 걸려 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도 눈에 그 여자의 모습만 어른거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도 못먹고 한숨만 쉬면서 앉아 있었다. 마누라가 물어도 창피해서 대답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거리다가 결국 병이 도져 앓아 눕게 되었다. 봄철이 되자 몇 마지기 안되는 농토였으나 일을 시작해야 할 터인데, 그 남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워 있기만 했다. 동네 사람들이 영문없이 앓고 있는 땔나무장수에게 문병을 왔지만 그 병의 내력조차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동네의 나이많고 점잖은 노인이 문병을 와서,
자네 어떻게 된 일인가. 사연이나 좀 들어 보세. 이러다 자네가 약 한 첩 못써보고 죽으면 큰일 아닌가. 자네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일세
하고 잘 타일러 물으니, 그 땔나무 장수가 그 때서야 입을 열어 아저씨, 사람들에게 창피해서 여태 말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 겨울에 나무팔러 서울에 갔는데, 참 예쁜 아가씨가 나무를 사려고 왔더라구요. 아무리 쳐다 보아도 미인이라. 아, 그러니 나같은 사람을 거들떠나 보겠어요. 그러나 저도 사내라, 그런 미인을 품에 안고 호강 한번 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어째 들지 않겠어요. 그러다 보니 내 병이 깊어져 결국엔 꼭 죽을 병이 들었구만요
하고 대답을 하였다. 노인이 들어보니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지라,
이 사람아, 그런 것을 가지고 생가슴을 앓아 왔나. 그런 거라면 내가 고칠 수가 있겠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사내가 바짝 다가앉으며, 아저씨 제발 살려달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 노인이 한참만에 입을 열어
서울 장안에 가면 서춘보라는 사람이 있네. 그 사람이 서울 장안의 왕초야. 그 사람을 찾아가 보면 무슨 수가 생길 것이네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술상값이나 장만하여 가되, 자네가 서춘보가 기거하는 집에 당도하거든 서춘보 계십니까하면 문도 안열어 볼 터이니, 가거든서춘보 자네 안에 있나하고 큰소리를 쳐 보게. 그러면 안에서 이거 어떤 자식이 이렇게 건방져하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나올 걸세. 그러면 사정을 하고 매달리게. 그 친구는 성격이 괴팍해서 선생이니 뭐니 하면 문도 안열어 보네. 그러나 욕을 하면 대드느라고 상대를 해주지
라고 일러 주었다. 이 나무장수가 돈을 장만해 가지고는 서울로 올라 갔다. 서춘보의 집 앞에 당도해서는 노인이 알려 준대로
서춘보 자네 있나
하고 소리쳤더니, 키가 한 발은 더 커 보이는 사내가,
이런, 어떤 놈이 나를 찾는 거야
하면서 서춘보가 나왔다. 나무장수는 노인이 시킨대로 서춘보의 손을 꼭 잡고 사정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왔는데, 동네 노인이 선생을 찾아 뵈어야만 해결할 길이 생긴다고 했으니 제발 저 좀 살려주시오라고 통 사정을 한 것이다. 그러자 서춘보는
이런 놈이 있나. 나무 팔러 왔으면 나무나 팔 것이지 어쩌자고 색시는 쳐다보고 다녀. 하지만 사정을 듣고 보니 사내로서 이해가 되니 내가 네놈의 병을 고쳐 주마. 그래 돈은 얼마나 준비했느냐.
라고 물었다. 그래 얼마를 해왔다고 대답을 하니, 그러면 되었다고 하고서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날 저녁 서춘보는 나무장수에게 자신의 의복을 내주며 갈아 입고 아무 시까지 기생의 집으로 오라고 일러 놓고는 먼저 술집으로 가서 그 기생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장안의 왕초가 왔으니, 그 예쁜 기생이 나와 술시중을 든 거였다. 나무장수는 밤이 이슥해져 그 술집에 당도해서는 약속한대로
야, 안에 서춘보란 놈이 있느냐
하고는 고함을 쳤다. 그러자 술을 먹고 있던 서춘보가 아니 어느 건방진 놈이 어른을 찾느냐 고 소리치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자 나무꾼은 태연한 자세로,
네놈이 서춘보냐
하면서 바짝 다가서서 서춘보의 뺨을 대여섯 대나 사정없이 때렸다. 그러자 서춘보가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술집 문을 박차고 달아나 버렸다. 기생은 갑작스러운 일에 눈이 훼둥그레졌으나, 서울 장안의 왕초인 서춘보를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나무꾼을 보니 어마 무서워라 싶었다. 기생 생각에 서춘보하면 장안에서 알아 모시는 왕초인데, 일 순간에 왕초가 뒤바뀐 것이었다. 기생은 곧 어서 앉으시라고 소매를 잡아 끌면서 술상을 다시 차려 오게 하였고, 그날밤 나무꾼은 꿈에나 그리던 예쁜 기생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밤새 동품을 하고는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있는데, 서춘보가 방안으로 썩 들어오면서
야 이놈아 이제야 소원을 풀었니
하면서는 빌려 주었던 자신의 의복을 갖고 껄껄 웃으며 걸어 나갔다. 그러자 기생은 그제야 제가 속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과천 땔나무 장수는 서춘보 덕에 죽을 병을 고쳤다고 한다.

[자료 제공:문원동 이종오]
여우고개(남태령)에 관한 전설
옛날 하리(과천동)에서 사댕이(서울 사당동)쪽으로 넘는 고개를 쉬네미라고 불렀는데, 여우 등쌀에 그걸 넘어 다닐 수가 없어서 저쪽에서 쉰 명이 모이면 건너오고, 이쪽에서 쉰 명이 모이면 저쪽으로 넘어가고는 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 차량이 다니는 남태령 고개가 아니고 그 옆에 여우고개라는 옛날 길에 대한 전설이다. 이 곳은 관악산과 우면산의 중간에 위치하여 고개가 높았기 때문에 옛날에는 여우가 자주 나와 사람을 홀려 곤경에 처한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숫여우가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자료제공자가 젊어서 신기경이란 분께 들은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어떤 지사가 묏자리를 잡는데 혼자 말로
그 막내 상제가 그만하면 지탱은 하겠다
고 하면서 묏자리를 잡아 주었다고 한다. 상제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지사가 견디기만하면 명당이라고 하였으므로 그 곳에 아버지의 산소를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산소를 쓰고 첫날 밤에 맏상제에게 죽은 아버지가 와서는
내가 편히 잘 수가 없으니 이장을 해 다오
라고 하면서 현몽을 하였다. 형제들이 모여 의논을 하였으나 새로 모신 산소이고 지사의 말이 있었으므로 이장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밤에는 둘째 아들에게 또 현몽하여 이장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대로 두었더니 사흘째 밤에는 막내 아들에게 와서
너희 형들에게 이장을 해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내가 네 애비니 제발 나를 좀 살려다오
하니 막내아들이
아버지가 오셨다면 한 번 뵈었으면 좋겠으니 방안으로 들어 오십시오.
하니, 어둠속에 숨어 있던 목소리,
아이구 이 흉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 주겠니라고 하면서 안들어오는 것이었다.
막내 아들은 돌아가신 후 5일장을 지냈으니 시신이 상했을 것인데, 죽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다닐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고개에 사는 여우가 제 집을 빼앗긴 것을 복수하려고 둔갑을 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막내 아들은 제발 들어와서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던 것이다. 들어오기만 하면 여우의 속임수를 밝혀 돌아가신 아버지가 편히 쉬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계속 애원을 하자 여우가 그럼 손을 들이밀 터이니 문은 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우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 밀자 막내아들은 힘을 주어 손을 꼭 잡은 후에 하인들을 불렀다.
돌아가셔서 땅에 묻힌 분이 살아서 돌아다닐 수는 없는 것이니 몽둥이로 때려 잡으러 하인들이 달려와 보니 죽은 주인마님이 와서 문 앞에서 꼼짝 못하고 서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머뭇거렸지만 하인들은 막내 상제가 엄히 꾸짖었으므로 정신을 차려 죽은 망자를 몽둥이로 때려 잡았다. 하인들의 몰매에 못이겨 죽어 넘어진 망자는 순식간에 여우로 변하였다고 한다. 막내 상제의 사려 깊은 행동으로 여우를 잡을 수 있었고 명당에 위치한 아버지의 산소를 지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암여우가 강감찬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강감찬의 아버지가 팔도어사가 되어 지방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집에 남게 된 큰 부인이 여자하고는 상관하지 말라 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전국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과천에 와서 남태령 고개를 넘어 가는데, 한 여자가 길 앞에 나와 어사의 앞길을 가로 막아 섰다. 부인의 당부도 있고 해서 그 앞을 스쳐 지나가려니까 그 젊은 미인이 웃으며 젊은 영웅께서 하루를 묵어서 가면 천하를 구할 수 있는 인연을 얻을 것인데 무슨 남자가 이러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연이 되어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다음날 떠나려는데, 그 여자가 앞으로 열달 후에 관악산의 어느 바위굴로 와서 아들을 찾아가라고 말하고는 여우로 변해 달아나 버렸다. 집에 도착해 보니 큰 부인이 어이구, 이 양반 신수가 훤하시구려
하고 말하면서 꿈에 어떤 여인이 나와 당신하고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고 하면서 귀한 인연으로 얻은 아들이니 날이 되면 찾아 오라고 해서 찾아다가 길렀다고 한다.
현감 민치록(閔致祿) 선정 일화
조선시대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민치록(閔致祿)의 선정비가 있는데, 하삼도로 부임을 가는 관찰사나 지방수령들이 이 곳을 지나가면 민치록에게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 예의였다.
지나가던 벼슬아치가 인사를 하려고 찾아오면 민치록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다음날 오라고 하면서 만나 주지를 않았다. 아전이 나가 손님에게 알려주면 손님은 별 수 없이 과천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과천은 당시 가난한 고장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농토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밥집이나 여관같은 장사로 먹고 살고 있었다. 현감인 민치록은 자신에게 인사오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잡아 놓아야만 고을 백성들이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음을 알고 일부러 손님을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하는 사람은 으레 수 십 명씩 사람들을 거느리고 다녔으므로 이들을 먹이고 잠재워야 했고, 민치록이 만나주지 않으면 떠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돈이 거의 떨어질 때 쯤 되면 민치록이 손님을 만나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민치록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으므로 과천에서 묵어 갔고 이들을 하루라도 더 잡아놓아야 주민들의 수입이 그만큼 늘어났으므로 지나가던 과객의 호주머니를 노린 상행위가 성행하였다.

[자료 제공:문원동 권광한(남, 69세)]
저승에 다녀 온 사람
한 동네에 아래 윗집이 나란히 살고 있었는데, 아랫집 할아버지가 큰 부자였다. 반면에 윗집의 내외는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살림으로 아랫집의 일을 해주면서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윗집의 내외가 아랫집 할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아 먹으려고 꾀를 짜내어 남편이 죽었다고 소문을 내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 꼭두새벽부터 아내는 남편이 죽었다고 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랫집 할아버지가 옆집에서 때아닌 곡성이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해 보니 일도 부려 먹고 잘 써먹던 놈인데 죽었다고 하니까 한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만히 올라가 보니 참말로 죽어서 자리도 덮어놓고 아낙이 목을 놓고 울고 있었다. 그런데 윗집 내외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가짜 송장을 만들어 장례를 치르고 남편이 며칠 간 도망해 있기로 짰던 것이다.
아내가 가짜 시신을 가지고 영감이 보는 앞에서 장례를 치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남편은 옷을 깨끗이 입고 아랫집 영감님댁 앞에서 얼씬거리기 시작했다. 죽어 묘까지 만든 사람이 살아 온 것이었다. 아랫집 영감이 그를 불러 들였다.
아 너 저승에 갔다더니 언제 왔니
하고 물으니 윗집 사내는,
예, 저승에 갔더니 아직 올 때가 못 되었다고 더 있다가 오라고 해서 도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감님이 먼저 간 할머니의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서,
그래 마님은 거기서 무얼 하시든?
라고 물으니 사내는,
아이구, 말씀도 마세요. 마님을 뵙기는 했는데, 차마 제 입으로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남 부끄럽고 어이가 없어서 원하며 대답을 피하려고 하였다. 답답해진 영감님이 왜 그러냐고 자꾸 캐 물으니, 마지 못한 듯 거 왜 몇 년 전에 저승에 간 못돼먹은 짚신장수 할아배하고 눈이 맞아 사는데, 아침 저녁으로 밥 얻어 나르느라고 옷도 못해 입고 다 떨어진 여름옷 하나로 겨우 가리고 사십디다. 불쌍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제가 저승갈 때 우리 마누라가 해 준 노잣돈 남은 걸 주고는 얼른 왔세요
라고 대답하였다.
영감이 생각해 보니, 아 이거 큰일 났거든, 세상에 이 소식이 알려지면 동네에서 얼굴도 못들고 다니겠더란 말야. 그래서 얼른 사내에게
얘, 너 저승가서 노잣돈도 없이 왔으니 집에 쌀이나 있겠냐. 쌀 한 가마니 져다가 먹어라하고는 쌀 한 가마니를 주어 돌려 보냈다. 사내는 쌀 한 가마니를 져다 먹고는 일할 생각은 않고 노다지 이 말을 팔고 다녔다. 쌀이 떨어질 만 하면, 옷을 깨끗히 차려 입고는 영감님 집 앞에서 얼씬 거렸다. 영감님이 불러다 놓고,
너 어디를 가는 길이니 하고 물으면 저 건넛마을에서 저승 갔다 온 얘기를 해 달라고 해서 가요
라고 대답하였다. 영감이 생각하기에 저놈이 저승 갔다 온 얘기를 하다 보면 자기집 할머니 이야기를 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얘, 너 거기 가지 마라. 어떤 놈들이 그런 말을 해서 착한사람 일도 못하게 하는 거여. 너희 집에 끼닛거리는 있니
하고는 달래서 물으면 쌀도 없어요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면 영감님은 쌀도 내주고 옷도 내주었다고 한다.

[자료 제공:과천동 김만배(남, 63세)]
이무기 이야기
예전에 한 노인이 길을 가다가 보리타작을 하고 쌓아둔 짚단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쌓아 놓은 지 오래되어 비를 맞고 썩은 보릿단이 들썩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이 되어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았더니 거기서 빨간색의 큰 구렁이가 기어나오는데, 대가리에 띠를 두르고 있었다.
노인이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것이 바로 이무기인데, 그 때는 미쳐 생각이 나지 않았고 놀라서 바라보기만 하였다고 한다.
그 뱀이 기어서 똘창(개울)으로 가는데 똘창보다도 더 굵어서 물이 넘쳐 흘렀다.
그 뱀은 사람이 바라보는 것은 관심도 두지 않고 혀를 날름거리며 뺏말(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부근)이란 동네에 있는 조개웅덩이라는 데로 기어 가더라는 것이었다.
조개웅덩이는 물이 깊어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조개가 살고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던 곳이었다.
이무기가 그 연못 속으로 사라지는 것 까지 보고는 노인은 단숨에 동네에 달려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였으나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후에 가끔 들에 매어 놓은 송아지가 없어지고는 했는데, 어떤 사람은 조개 웅덩이에서 이무기가 나와 송아지를 물어 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이 이무기는 어느날 시흥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자료 제공:갈현동 이용진(남, 75세)]
관악산의 8명당
관악산의 8명당 중 하나로 가장 명기를 빛낸 곳이 낙성대인데, (강감찬의) 어머니가 꿈에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잉태하였으므로 낙성대라고 한다. 그곳이 제일 좋은 자리라고 한다.
봉천동은 옛날 노인들이 사람이 살아나가려면 우선 하늘을 받들어야 한다고 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이 곳도 명당이라고 한다. 이 밖에 신림동 하고 안양 비산동 쪽에도 정승묘 자리가 있는데 그곳이 명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부제2종합청사 뒤편의 강득룡묘가 명당이라고 한다. 그 곳의 지형이 올챙이 허리처럼 생겼다고 하고, 골짜기가 있고 가운데로 나무꾼이 다니던 길이 있는데, 그것이 임금 왕(王)자처럼 생겼다고 한다. 그 곳의 옛날 이름이 능허리다. 옛날 능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지역이 너무 좁아서 잡지 않았다고 한다.
우면동의 정승 산소자리가 또 명당이라고 한다.

[자료 제공:문원동 권광한(남, 69세)]
숙종임금과 효자 이야기
숙종이 미행을 하기 위해 왕궁을 나와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선가 울음소리와 장구 소리가 나며 노래하는 소리가 나는 집이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이 그 집으로 들어가 보니, 한 할머니는 울고 있고, 여중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남자는 장구를 치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나는 지나가는 과객인데,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들어왔으니 사연이나 알려 주시요. 라고 했더니, 장구를 치던 젊은 남자가 하는 말이,
오늘이 우리 어머니 생신인데, 무얼 해 드리고 싶어도 집에 가진 것이 없어서 걱정하던 차에 저희 집사람이 머리를 깎아 달비를 팔아 생신 음식을 해드렸소. 그리고 아내는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고깔을 쓰고 춤을 추고, 저는 아내의 춤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 장구를 치고 있던 거요.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저희 살림 형편을 아시니 생신을 차린 우리 부부가 기특하기는 해도 머리를 깎은 며느리가 안쓰러워 울고 계신 거랍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숙종 임금이 이렇게 효도를 행하는 집안이 없다고 생각하고 젊은이에게 자네 글을 좀 읽었나?
하고 물으니, 젊은이가
생활이 곤궁하여 겨우 사서를 조금 읽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내가 한양에 다녀오는 길인데, 모레 별과가 있다고 하니 응시해 보라고 하고는 급히 성으로 돌아 갔다. 그리고는 신하들에게 별시를 보도록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어명에 영문을 알지 못하는 신하들이 서둘러 과거를 준비하였다. 젊은이가 한양으로 올라와 보니 정말 별시를 본다는 방이 붙어 있어 이에 응시하였다. 과장에 들어 갔더니, 문제가 한 노파는 울고, 젊은 여중은 춤을 추고, 사내는 장구치며 노래한다 였다. 자신이 경험했던 것이므로 젊은이는 곧 글을 써서 바치었으나, 다른 응시자들은 문제의 뜻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급제는 당연히 젊은이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왕 앞에 나가 사은숙배를 드리자, 왕이 그의 효행을 칭찬하며 좋은 벼슬자리를 제수하여, 젊은이는 어머니를 잘 모시고 아내를 부양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자료 제공:문원동 이종오]
현명한 새색시 이야기
옛날 두 내외가 살림을 사는데,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데 장꿩 한 마리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가는 땅으로 내려앉고 다시 하늘로 솟아 오르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편이 솔기장 밑에 몸을 숨기고 바라보니 꿩이 땅에 내려와 무엇을 쪼고 하늘로 올랐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또 쪼고 있었다.
무엇이 있어 저러는가 하고 개울가를 따라 올라가 보았다. 거기에는 구레이(구렁이) 큰 놈이 암꿩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을 잡아 먹으려고 덤비고 있었다.
뱀이 덤빌때마다 수꿩이 하늘로 올라가 내려와 뱀의 대가리를 쪼아 쫓고 있었다.
그래서 뱀은 알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지쳐서 결국 제 집으로 기어 가고 말았다.
수꿩은 뱀이 도망간 후 지쳐 땅에 내려와 이제는 뱀이 달아났으니 자기 알이 무사할 것 같아 안심을 했는지 그만 맥이 쑥 빠져 죽고 말았다.
나무꾼은 꿩이 뱀하고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면 아내가 먹지 않을 것이니 포수가 잡아 놓고 찾지 못한 것을 주어 왔다고 하자고 생각하고는 주어서 나무 짐위에 올려 가지고 집으로 가져 갔다. 집에 도착하여 나뭇짐에서 꿩을 내리자, 아내가 보고, 아, 어디서 꿩이 나서 가져 오셨소라고 묻자, 나무꾼은 생각했던 대로, 포수가 잡아 놓고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찾아간 것을 주어 왔으니 여름내 잘 먹지도 못하고 일하느라고 고생하였으니 삶아서 먹어요 라고 말하였다.
아내가 돌가지를 넣고 삶아서 두 내외가 잘 먹었다.
그런데 자식이 없던 차에 그걸 먹고 아내에게 태기가 있었다.
나무꾼이 좋아하여 더욱 열심히 나무를 하고 살았다.
열 달이 흘러 하루는 산에 다녀오니 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게를 내려 놓고 구들(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아들이었다.
아들이 서너 살이 되어 하루는 남편이 산에 간 사이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텃밭을 매고 있는데, 어디서 쏴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꿩에게 쪼여 달아 났던 뱀이 와서, 네가 꿩덕이냐 하고 물었다.
꿩을 먹고 나은 아들이라고 꿩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아들이 그래 내가 꿩덕이다
라고 대답하니, 뱀이, 네가 아직 어려서 내가 지금은 데려 갈 수 없지만 네가 나이가 들어 장가를 들면 첫날밤에 보자 라고 말하였다.
아이가 생각하니, 어머니에게 말을 하면 기절할 것 같아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겨 두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어느덧 열 여섯 살이 되었다.
인근에 얌전한 색시가 있어 청혼을 하여 드디어 혼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옛날 뱀이 한 이야기가 있으므로 기쁠 수만은 없었다.
장가를 간 첫날 밤에 신랑이 자지 않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으니 새댁이, 무슨 일이 있어요. 얼굴에 수심이 있고 자지 않고 앉아 계십니까? 라고 물었다.
꿩덕이가 속일 수 없어, 우리 부모님이 꿩을 잡숫고 나를 낳았는데, 그 꿩이 뱀하고 싸우다 죽은 것으로 뱀이 원수를 갚겠다고 하니 어쩌면 좋겠소 라고 대답하였다.
새댁이, 어째 그만한 일로 걱정을 하십니까. 당신 옷을 벗어 나에게 주시오라고 웃으며 말하였다.
신랑이 옷을 벗어 주자 아내가 그 옷을 입고 뱀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밤이 되자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뱀이 담을 넘어 들어 왔다.
자지 않고 기다리던 새댁이 칼을 들고 마당으로 뛰어 나가 뱀에게 소리쳤다.
이제 오나. 내가 꿩덕이다. 잡아가려면 어서 잡아가라 하고 말하였다.
뱀이 잡아 먹으려고 하지는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켁하면서 구슬을 하나 뱉어 내 주었다.
새댁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뱀은, 이것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다 내 주는 구슬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보물이다 라고 말하여 새댁은 이를 받아 놓았다.
뱀은 또 하나의 구슬을 주며, 이 구슬은 물이 깊은 곳에 던지면 물이 얕아져 건너 갈 수 있고, 불이 난 곳에 던지면 불을 끌 수 있는 보물이다 고 하였다.
색시가 그 구슬을 받은 후에 다시, 빨리 잡아 먹지 뭘 하는 것이냐 고 하니 뱀은 대답은 하지 않고 잠시 있다가 구슬을 또 하나 주었다.
파란색 구슬이었는데, 무엇하는데 쓰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뱀이 이 구슬을 보여주고 죽으라고 하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 죽는 보물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 소리를 들은 신부가 구슬을 뱀 앞에 보이며, 네가 나를 잡아 먹으러 왔으니 네가 제일로 보기 싫다. 그러니 어서 죽어라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큰 뱀이 배를 뒤집고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구슬 세 개를 얻은 신랑과 각시는 그 후 행복하게 평생을 잘 살았다고 한다.

[자료 제공:부림동 박수남(여, 80세)]
말이된 소금장수
두 내외가 사는데, 남편이 소금 한 가마니를 지고 서울로 팔러 갔다. 하루 종일 걸어가다가 지쳐 쉴 곳을 찾았으나, 근처에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고갯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 보니 개울가 너머에 불빛이 하나 가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인가를 찾은 소금장수가 개울을 건너 그 집으로 가서 주인을 부르니, 한 여인이 나왔다.
아주머니 제가 시골에서 소금을 팔려고 서울에 가는 길인데, 길이 어두워져서 하룻밤 묵어가려고 하니 하루만 재워주시오
라고 부탁을 하니, 그 여자가,
집도 마침 비었으니 어서 들어오라
고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소금짐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니 여자가 시래기 죽을 한 그릇 퍼서 상을 차려 들어왔다. 저녁대접까지 받고는 노곤한 몸으로 잠이 들려는데, 주인 여자가 떡을 한 접시를 들고 와서 밤에 시장할 때 먹으라고 놓고 나갔다. 소금장수가 떡 한 쪽을 다 먹고 두번째 쪽을 반 쯤 먹었더니 몸이 붓기 시작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떡을 마저 먹었다. 떡을 다 먹고 나자 자신이 말이 되어 있었다. 말도 못하고 답답하였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생각할 수록 기가 막힌 일이었다. 집에 곡식이 떨어져 소금을 팔려고 나왔는데 말로 변하였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그 때 방문이 슬며시 열리며 주인 여자가 나와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럼 그렇지, 영락 없이 변하였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여자는 아침을 해 먹고는 말에게 굴레를 씌어 읍내 장터로 팔러 나갔다. 사람이 말로 변한 것이기 때문에 말이 아주 잘 생겼고, 그래서 좋은 가격을 받고 농사짓는 집에 팔려 갔다. 말을 사 온 농부가 밥을 먹으러 방안으로 들어가자, 말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안되겠다
고 생각하고는 고삐를 물어 끊고 뒷산으로 도망을 쳤다. 한참을 가다가 채소밭에 이르렀는데, 뛰어 오는 바람에 목이 말라서 무를 하나 뽑아 어적어적 씹어 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다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자 굴레를 벗어 던지고 옷을 주어 입었다. 그 때 멀리서 말을 산 주인이 뛰어 오면서 말 한 마리가 뛰어 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냐고 물었다.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삐 고향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 죽을 뻔한 일을 말해 주었다. 아내는 살아 돌아온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반가워 하였다.
사내는 원수를 갚기 위해 다시 소금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서울로 올라 갔다. 그 집에 도착한 소금장수는 다시 묵어 갈 것을 청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말 한 필을 팔아 100량을 받은 주인 여자는 또 한 사람이 오자 얼른 묵어 가라고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역시 죽을 내 주고 난 후 밤늦게 떡을 가져다 주었다. 소금장수는 이번에는 떡을 먹지 않고 이불 밑에 잘 감추어 두었다. 새벽에 주인 여자가 나와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말로 변하지 않은 것을 보더니 이상하게 생 각했는지 부엌으로 가서 남은 떡을 떼어 먹어 보았다. 한 점 두 점 먹던 떡이 어느덧 두 쪽을 넘어섰다. 그러자 주인여자가 말로 변하였다. 소금장수가 그 말에다 굴레를 씌어 장으로 팔러 갔다. 말이 아주 잘 생겼으므로 이름난 높은 관리에게 팔렸다. 소금장수는 말판 돈을 갖고 집에 가서 잘 살았다고 한다.

[자료 제공:문원동 권광한(남, 69세)]
현명한 노인의 지혜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온 사신이 나무의 아래 위를 똑같이 다듬은 것을 가지고 와 위와 아래를 구분하여 뿌리를 찾아보라는 문제를 냈다. 조정에서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 고려장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한 효자가 차마 노모를 버릴 수가 없어 산속에 움막을 짓고 모시고 살고 있었다. 관리인 아들도 문제를 풀지 못하여 큰 걱정을 하다가 움막으로 밥을 가지고 갔다. 어머니가 보니 아들 얼굴에 수심이 있으므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들이 중국사신이 낸 문제를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그렇게 쉬운 일을 가지고 걱정을 하느냐고 하면서,
나무를 물에 띄우면 한 쪽이 기울어 가라앉으니 그 쪽이 뿌리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 아들이 곧 임금 앞에 나가 그 사실을 말하니, 중국사신은 그 지혜에 감탄을 하고는 돌아 갔다. 임금이 그 아들에게 칭찬을 하면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나라에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어머니가 알려준 사실을 말하였다. 그러자 왕이 노인의 지혜가 나라를 구하였다고 하면서 고려장의 풍속을 금지시켰다.

[자료 제공:김용순(남, 86세)]
현풍 곽씨 효부열녀 이야기
한양에서 벼슬을 하다가 잠시 조정을 나와 산천을 유람하던 한 과객이 현풍 곽씨에 효자 열녀가 많다는 소문을 확인하려고 현풍 곽씨가 모여 사는 동네를 찾아 들어갔다. 한 집의 사랑에 들어가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오다가 강물을 건너 오는데, 한 새댁이 한쪽에는 초립동이 남편을 끼고 한쪽에는 노령한 시아버지를 끼고 물을 건너려고 하였으나 물이 깊어 쉽게 건널 수가 없었소. 그러니 어떻게 하면 물을 건널 수 있겠는지 아시는 분은 좀 일러 주시요 라고 하였다.
주인이 듣고 보니 문중에 효행이 많기로 소문난 자신들을 시험하기 위한 문제인지라 대답을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서 안채로 들어갔다. 과객이 보니 주인의 행동이 이상하였으므로 자신도 조심스레 따라서 안채로 들어가 숨어서 지켜 보았다. 주인 남자는 대답을 잘못하면 집안을 망신시킬 수 있는 문제였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인이 보니 남편이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여 고민을 하고 있으므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남편이 해 준 이야기를 듣고 부인 역시 생각해 보았으나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 보던 열 다섯 먹은 딸이,
그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깊은 물에 들어가 파도가 치면, 남편을 얼른 물 속에 두고 시아버지를 물 밖으로 모셔 안전하게 해 놓고, 자신은 곧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 그 자리에서 죽으면, 효부 열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과연 시아버지를 살렸으니 효부요, 남편이 죽은 자리에서 따라 죽으니 열녀였다. 그 소리를 들은 과객이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 처녀를 며느릿감으로 청혼하였다고 한다.
문둥이 아들과 현명한 며느리
문둥이 아들을 둔 재상집이 있었다. 아들이 나이가 차 혼인을 시켜야 했으므로 매파를 내세워 혼처를 알아 보았다. 마침 어떤 양반가에 참한 규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청혼을 하였다. 신부집에서는 신랑집의 문벌을 듣고 허혼하여 혼례가 치러지게 되었다. 장가를 드는 날 해를 묵혀야 했으나, 사정상 당일 신행을 하는 조건을 내세워 딴 사람이 대신 혼례를 치렀다. 당일로 시댁으로 온 신부가 며칠이 지나도록 신랑이 방에 들어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니, 여종이 밥때만 되면 밥을 담아서 어디로 가고는 하였다. 이상히 여긴 새댁이 뒤를 따라가 보니, 여종이 후원으로 들어가 갈대밭 속의 작은 초당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가만히 안을 들여다 보니, 피가 뚝 뚝 떨어지는 문둥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새댁이 허벅다리를 묶어 피가 통하지 않게 한 다음에 칼로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어 후원의 초당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그 문둥이에게 그것을 먹게 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종이 밥을 가지고 가보니, 문둥이가 기절하여 넘어져 있었다. 집안이 소란해지고 대감과 마님이 분주하게 돌아다녔지만, 새댁은 모른 척 하고 방에 있었다. 문둥이는 죽은 것이 아니고 기절해 넘어진 것이었다. 모른 체 하고 있었더니, 문둥이 남편의 몸에서 벌레가 기어나와 온 방안에 가득하였다. 그 벌레가 모두 나오자 남편의 정신이 차츰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자 새댁이 시부모 앞에 나가 자신의 한 일을 말하고 남편의 몸이 나아지게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그 후 부부는 금실좋게 해로하였다고 한다.

[자료 제공:정분순]
오지장수가 잡아준 명당
오지그릇장수가 지게에 그릇을 지고 돌아다니다가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주막거리에 가서 주인에게 방을 하나 얻어 들어가 자게 되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서 나이가 든 양반이 가죽가방을 들고 잠을 자러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먼 길을 왔는지 밥을 청해 먹고는 금방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었다. 오지장수가 가만히 그 사람의 행색을 보니, 돈 많은 부자가 길을 가다가 밤이 늦어 묵는 것이 분명하고, 그 가방도 보아하니 돈가방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오지장수는 옆에 사람이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슬며시 일어나 가방을 들고 몰래 나와 밤새 도망을 쳤다.
한참을 가다가 가방 안을 살펴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겨울이라 온 산천에 내린 눈이 가득한데, 한 곳에만 눈이 녹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 곳으로 가서 가방을 열어 보니 창호지에 싼 해골이었다. 깜짝 놀란 오지장수가 해골을 골짜기 아래로 내던져 버리려고 하였으나, 남의 해골을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눈이 녹은 자리를 골라 땅을 파고 대충 파서 묻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돈이 든 가방인 줄 알고 오지그릇을 실었던 지게도 그대로 둔 채 달려온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잠을 자던 주막으로 돌아가면 해골 주인에게 잡힐 것 같아 그대로 집으로 도망을 쳐 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달려 오면서도 누가 목덜미를 잡는 것 같아서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렸다. 집에 돌아가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마누라가 화를 내며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야단을 쳤다.
해골을 본 덕분에 놀라서 병이 들어 며칠을 집에서 누워 있었더니, 마누라가 돈을 구해 왔다고 다시 나가 장사를 하라고 해서 주인집에서 그릇을 받아가지고 장사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 한 동네에 들어 갔더니 잔치를 하는 집이 있었다. 국수나 얻어 먹으려고 들어 갔더니, 주인이 나와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버지 해골을 잃어버린 주인은 오지장수를 찾으려고 백일 잔치를 하고 있었다.
오지장수는 도망칠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대로 있었다. 다행히 주인은 오지장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며칠 동안 대접을 잘 받고 나서 떠나려고 하면, 주인이 붙들고 며칠 더 쉬어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려는 주인집 형제들의 정성에 감화된 오지장수가 하루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대청 아래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용서를 빌며 주인에게 가방을 가져간 사람이 자기라고 말하였더니, 주인은 제발 시신만 찾게 해 주면 땅을 사 주겠다고 말하였다.
오지장수는 맏상제를 데리고 해골을 묻은 곳에 데려가 알려 주었다. 주인은 약속대로 땅을 사서 주었다. 그런데 맏상제가 보니 다른 곳은 눈이 쌓였다가 녹아 땅이 질었으나, 그 곳은 양지녘으로 눈이 내리자마자 녹아 흙이 뽀송뽀송한 곳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맏상제가 지관을 데려가 그 곳을 살펴 보게 하니 천하의 명당으로 자손이 길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오지장수가 알맞게 파고 묻었으므로 시신도 그대로 두라고 하는 것이었다. 맏상제는 산 주인을 찾아 그 곳을 사들여 정성껏 아버지의 무덤을 치장하였다. 이후 시신을 잃어 버렸던 삼형제가 모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자료 제공:정세준(남, 63세)]

담당자 : 문화체육과 김영창 (02-3677-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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